



새로 가입한 페이스북 그룹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덴마크로 오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굉장히 많은 사연이 있었고 따라서 필요한 도움의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많았고 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내가 도와준 일의 대부분은 정해진 장소에 가서 키나 물건을 대신 받아주는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곳도 가보고 산책도 하고 겸사겸사 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 개월동안 최소 30명 이상을 도와주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일단 세계 각지의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언어는 당연히 영어를 썼었는데 자신의 모국어가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대화하다보면 상대방의 성격과 특징이 드러난다. 이모티콘을 많이 쓰는 사람, 단답으로 할 말만 하는 사람, 공손하게 부탁하는 사람, 자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임에도 당당을 넘어서 뻔뻔한 느낌을 주는 사람, 굉장히 고마워 하는 사람, thanks:)가 전부인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장소, 과정, 방법 등을 나에게 알려줄 때도 정확하게 필요한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두번 세번 물어야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명확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또 신기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로 느껴지는 그 사람의 느낌은 실제로 만났을 때의 느낌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텍스트로는 무뚝뚝하게 느껴졌어도 실제로 만나보니 굉장히 친근하고 스윗한 사람도 있었고 텍스트로는 감정표현이 풍부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딱 도움만 받고 휭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 역시 첫인상에 불과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깨질 수 있는지 이 과정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깨달았다.
물론 개개인이 다 다르고 특성이 있지만 사실 문화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당시는 덴마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독일인은 어떻고, 멕시코인은 어떻고 하는 이미지에 국한되어 사람들을 이해했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에는 그런 stereotype이 도움이 되니 어찌보면 안전하고 본능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사고방식이 가지는 오류를 느꼈고 이후로는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그 경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


하오는 미국에서 살던 중국인이었다. 처음 텍스트로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는 평범한 대화였다. 그런데 이후 시간이 어긋나면서 오해가 발생했다. 하오에게 시간이 맞지 않으니 내일 키를 줘도 되겠냐고 했는데 갑자기 말투가 차가워지면서 자신은 최대한 빨리, 당장 키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느낌상으로는 내가 키를 가지고 도망갈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잘못도 아니고 상황의 이유로 시간이 안 맞는데 내 스케쥴까지 조정해가면서 하오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하오는 오늘 꼭 만나야 한다고 거의 화를 내며 말했고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일정을 조정하고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만나고 키를 전해주고 몇 마디 말을 나눠보니 하오는 굉장히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 않길래 나는 중국어를 연습할 겸 중국어로 대화를 했다. 내가 중국어를 하자 하오는 급 마음이 활짝 열린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굉장히 친한 친구가 되었고 하오는 재미있게도 내가 도와줬던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친구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만나던 순간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을 가져왔던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하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감동이었다. 도움을 주고도 마음이 속상하거나 내가 뭐하자고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도와주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하오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간의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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